2024년9월30일

아침 샤워하면서 생각한 것.

참 비겁하던 기억이 많다.
거짓을 고백하고, 마음을 숨기고, 심술로 빼앗고, 인정하지 못하고.
두려움 앞에서 용기를 낼 수도 있었을텐데, 주로 비겁했다.
타인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보통 나의 비겁함은 다른 이가 알아채지 못한다.
나밖에 모르는 비밀.
앞으로도 이 비겁함을 숨기면서 살아야하는데... 어이고...

2024년9월29일

설거지도 하고, 청소기도 돌리면서 생각한 것.

세상에 참 억울한 일이 많다.
그래서 이것저것 생기는 지도 모른다.
음악이 생기고, 집이 생기고, 판사가 생기고, 연인이 생기고, 친구가 생기고, 대화가 생기고, 두 손이 생기고, 생각이 생기고, 시간이 생기고, 농사가 생기고, 숫자가 생기고,  그림이 생기고, 은행이 생기고, 영화가 생기고 등등등.
이렇게 생긴 것들이 억울함을 달래주기도 한다.
그렇다고 억울함이 사라지나, 그냥 달래주는 거지.

2024년9월28일

9월이 끝나간다.

오늘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 친구들을 만난다.
여전히도 메신저에서 낄낄대고 농담따먹기나 하는 사이인데, 두 명은 어느새 아빠가 됐다고 한다.
그 중 한 명은 애가 둘이란다...
점심 약속을 잡아서 만나는데, 애를 데려와도 되냐고 한다.
세월 참 묘하다.

재미난 친구의 제안으로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매주 겪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일상의 기록을 목적으로 한다.
앞으로 내 일상에 대한 기록이 이 일기와 함께 말로도 남겠다.
잘 녹음해봐야지.
시간이 흐르고 나중에 들으면 재밌겠다.
그때도 세월이 참 묘하다고 느끼겠지.

2024년9월26일

설거지를 하다가 생각한 것.

일반화의 어떤 부분이 폭력적으로 느껴진다고 해서 모든 게 다 상대적이다 라고 단정하는 건 아쉽다.
상대성이 많은 것을 안심(?)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일반성을 무시하는 것이 가능할까.
다만, 일반성과 절대성의 차이가 있다는 사실은 인지해야겠지.

다르다는 것의 집착은 외롭고 아프다. 그만큼 아름답기도 하겠지만.

2024년9월25일

안경을 새로 맞췄다.
오늘 새로운 안경을 낀 모습을 보니... 어색하네.
머리도 했다.
거울을 보면 어색하다.
내가 나를 보는 게 어색하다.
이상하네.

2024년9월24일

안경이 무거워서 요즘 계속 바꿔야지 했는데 오늘 맞췄다.
돈 좀 썼네... 오래 쓰고 다녀야겠다.

오랜만에 매트릭스봤는데 무쟈게 재밌넹...

2024년9월23일

이틀 전, 성미산알루에서 반년 만에 만난 친구와의 술자리.
-맥주 2잔, 한라산 2병, 골뱅이쫄면, 순대야채볶음

어제, 책모임을 가장한 을밀대에서의 저녁식사 +포켓폴 내기(졌음)
-평냉, 녹두전, 수육

오늘, 희로에서 일기 모임 만남 예정.
저녁에 합정에서 전지한 씨 버스킹 공연도 있다고 했는데 보러가야지.

아, 어제 을밀대 가기 전에는 에무시네마에서 <수유천>을 보고 사직 커피에 갔다.
<수유천>을 보며 제법 낄낄댔고, 홍상수는 여전하고, 김민희는 스타일도 연기도 대단했다.
영화를 보며 웃긴 했지만, 그 이야기와 상황을 에워싸는 서늘한 감각이 인상 깊었다.
그의 초기작 느낌이랄까.
사직터널이 보이는 카페 풍경은 새로웠다.

2024년9월20일

지난 이틀 간 행동 정지.
기분은 상황을 해석한다.
좋으면 좋게, 불편하면 불편하게.
그러고 보면 진짜 상황은 기분이 찾아오고 나서 시작된다.

어제 짧은 추리 소설을 몇 편 읽었다. (미스테리아 43호)
복잡한 범죄 상황을 멋들어지게 해결하는 탐정이 있고, 변호사가 있고, 경찰이 있다.
추리의 과정은 난장이다.
사실과 정보가 파편적으로 나열되고, 주인공은 그것들을 우연히 또는 필연히 만난다.
인물과 사건, 의도와 방법, 시간과 장소 같은 것들이 뒤죽박죽이 된다.
그 모든 것들이 하나의 퍼즐로 완성되는 때를 위한다.
10월에는 추리 소설을 써 볼까 했는데, 가능할 지는 모르겠다.

미스터리가 내 주변에서 보이기를 기다려본다.
그 진상을 파헤쳐 볼 수 있으려나.

2024년9월18일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들이 찾아오면 어찌할바를 모르겠다.
오늘도 끝이다.
연휴라고 다를 것도 없는데 풀어진다.
가을이 오면 달라지겠지.
겨울도 다시 오면 지금은 지나가 버린 때가 된다.


2024년9월17일

추석 당일이다.
친구 두 명이 저녁에 집을 방문했다.
같이 밥을 해 먹고, 술도 한 잔 하고, 얘기도 나누고, 홀덤도 몇 게임 했다.
참 시시하지 않은 게, 좋은 사람을 만나는 순간에 있다.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은 그새 각자의 이야기를 쌓아 올렸다.
각자의 분위기를 만들고, 거기서 각자가 자랐다.
하나도 시시하지가 않다.

낮에는 『미스테리아』에 실린 정성일 평론가의 글을 읽었다.
영화 <큐어>에 대한 비평이었다.
기이한 것과 으스스한 것에 대한 생각을 잠깐 했다.
글을 쓰면서 앞으로도 계속 할 생각인 것 같았다.

꿈에 대한 생각을 했다.
나는 꿈을 자주 꾸지 않는다.
꾸겠지만 기억에 없다.
현재 나에게 기억에 남는 꿈은 손가락에 꼽는다. 
한 다섯 개 정도가 또렷하게 남아있다.
기이하고 으스스한 꿈들인데, 이 기억이 소중하다.
동거인을 비롯해서 종종 꿈을 잘 꾸는 친구들을 만나면 조금 부러울 때도 있다.
나에게 꿈은 너무도 강렬한 장면이다.
기이한 이미지, 깨고 나면 으스스한 느낌.
여기서 출발하는 글을 쓰게 될 것 같다.
기억에 남는 꿈을 언제 다시 꾸려나.

2024년9월16일

혼자서 좋은 시간을 만드는 것의 어려움.

혼자 집에 있으면 하염없다.
생각은 단정하지 못하고, 몸은 늘어지니 생활을 챙기기 어렵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핸드폰으로 짧은 영상을 보는데, 글쎄 이 스크린 안에 뭐가 담겨있는지도 생각하지 않을텐데 왜 보고 있나 싶다.
글을 쓰는 건 고사하고 읽는 것도 쉽지 않다.
꼭 혼자 있게 되면 좋은 시간이 힘들다.
말을 하거나 듣지는 않으니, 생각과 움직임으로만 있어야 할 텐데.
고독하다는 것도 가만히 느끼고 있지를 못한다.
혼자고, 누구도 없으니 분명히 고독해야 하는데, 혼자라서 고독함을 잘 못 챙긴다.
오히려 누구라도 옆에 있으면 고독이 쉬웠던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역설이란...

2024년9월15일

추석 연휴가 시작된다.
가족들을 만나고, 맛있는 추석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 있겠다.
명절에 가족들을 만나지 않은 것도 벌써 몇 해가 지났는지 모르겠다.
2019년부터는 명절에 본가(경기도 김포)에 가지 않고 있다.
그동안 지방에서 활동을 하다 보니까, 명절 교통 상황을 고려해서 일부러 피하곤 했다.
올해는 추석은 작업 일정이 밀려서 연휴 동안에는 이동하지 않을 계획이다.

오늘 오전에는 책 모임을 하고 오후에는 뒹굴거리며 시작을 죽였다.
저녁이 되니, 뭐라도 할까 싶었지만, 딱히 무얼 하지는 않았다.
써야 할 글이 있는데 미루기만 했으니 내일은 또 마음이 바쁘겠다.

글도 글인데, 우리가 소멸하는 방법 계정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이 들었다.
그래도 나름 출판 계정인데, 독립 출판을 이어서 해봐야 할까 싶다가.
새벽 한 시에 인스타 라이브를 켰다.
몇몇 아는 사람들이 들락날락했다.
인사를 나누고 이렇게 일기를 이어서 쓴다.

무난하게 하루가 흐른다.
인생도 무난하게 흘러가려나 싶지만, 머릿속에 찾아오는 질문들이 쉽지 만은 않다.
쉽지 않은 인생이라고 즐겁지 말라는 법은 없다.
걱정할 것도 없다. 사실 걱정은 된다. 사실 엄청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다 모를 것들이다. 내 마음도 생각도.

책 모임에서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읽고 있다.
기가 막힌 소설이다. 반 정도 읽었는데, 남은 이야기도 기대가 된다.
내 삶도 반 정도 지났다고 보는데, 남은 이야기도 기대해봐야겠다.
잘 쓰여진 소설보다야 재밌지 않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내 삶인데 내가 기대해야지.

2024년9월14일

단편 하나가 또 얼추 정리됐다.
여섯 번째로 쓰는데 여섯 배 어려워졌다.
하면 할 수록 어려운 것...
다음에는 조금 더 수월하기를 바라며...
추석 연휴에는 희곡을 쓰게 되겠다.
조용하게 글 쓰는 시간을 만든다.

2024년9월13일

비가 내린다.
요즘 빌 에반스를 듣는다.
오늘처럼 비 오는 날씨랑 잘 어울리네.

2024년9월12일

S와 팟캐스트 녹음을 했다.
역시 마이크가 앞에 있으면 말하는 게 어렵다.
앞으로 매주 녹음을 할텐데 익숙해지겠지.

H가 저녁에 와서 맥주를 한 잔 했다.
오랜만에 만난 H는 요즘 생각이 많다고 했다.
먹고 사는 걱정, 창작하고 싶은 표현 욕구, 다양한 삶의 방식을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 등
다들 살면서 걱정과 고민이 많은 것 같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A는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잠결에 이런 저런 대답을 하면서 뭐가 재밌는 사람일까 생각해봤다.
재미는 상대적인 것이겠지.
살면서 잘못한 것 세 가지를 말해보라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너무나도 많았지만, 몇 가지 추려서 말했다.
학생 때 어머니께 소리 지른 것.
군대에서 후임 때린 것.
8살인가 9살 때, 다투던 친구 집까지 따라가서 괴롭힌 것.
지금 생각하면 다 왜 그랬나 싶다.
사는 건 미안한 일을 많이 만드는 것과 같다.
살면서 받았던 것 중에 좋았던 게 무엇인지 세 가지 말해보라고 했다.
이 역시 너무도 많았지만 추려서 말했다.
졸업 후 막막한 미래에 좌절했을 때, 내가 잘 할 거라고 믿는다며 아버지의 응원을 받았을 때.
열심히 공부한 결과를 보고 내가 인정하는 사람으로부터 진심 어린 칭찬을 들었을 때.
가지고 싶었던 물건을 A에게 깜짝 선물 받았을 때.

좋은 삶은 뭘까.
20대 초반에는 깊은 생각이 좋은 삶을 만들지 않을까 싶었다.
몇 해 전에는 적절한 질문이 좋은 삶을 만들지 않을까 싶었다.
지금은 글쎄, 좋은 습관이 그에 걸맞은 삶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

2024년9월10일

2018년 아는 지인에게 오디오 믹서를 중고로 산 적이 있다.
당시 팟캐스트를 한 번 해볼까 싶었는데, 무엇이든 장비빨 아닌가.
마이크, 믹서 등 집기를 구입해서 친구들과 놀면서 녹음을 했었다.
물론 얼마 후 바로 창고행이었지만...
이후로 이사를 몇 번이나 다녔지만 믹서는 그때마다 창고에 쏙쏙 들어갔다.

올해 2월에 또 다른 친구 S와 팟캐스트를 해볼까 말을 꺼내고 몇 번의 테스트 녹음을 했었다.
핸드폰으로 장난치듯이 녹음을 했었는데, 그것도 몇 번 하고서 중단된 상태였다.

오늘 오랜만에 다시 S와 녹음 일정을 잡고서 집 창고에 있던 믹서를 슬슬 꺼냈다.
그렇게 먼지가 쌓여있던 믹서는 2024년 9월 다시 세상 밖으로 나왔다.
먼지도 닦고, 사용 방법도 찾아보고, 테스트도 이리저리 했다.
팔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았던 물건을 다시 꺼냈는데, 반갑더라.
이 반가움은 물건이 지니고 있는 내 과거의 한 순간 때문일지도...

S는 삶의 이야기를 꺼내며 앞으로 어떤 콘텐츠를 할까 의견을 냈다.
그렇게 우리 둘은 일상에서의 에피소드를 무겁지 않게 기록해보기로 했다.
뭐 그렇다고 아무거나 말하지는 않겠지, 소리로서, 말로서 기록할 만한 이야기들을 생각해야겠다.
의미 없는 잡담은 아니고, 그렇다고 대단한 정보도 아닌... 무엇이 될 지는 해보면서 알게 되겠지.
내일 본격 녹음을 시작하기로 했다.

2024년9월9일

지루함을 느끼는 건 역량이 부족해서라고...
끄덕끄덕.

2024년9월8일

지난 저녁 짧은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청소를 하면서 생각한 것.

지난 저녁 A는 의욕? 의지? 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무언가 생활이 무기력한 것 같았다.
나 역시 종종 그럴 때가 있기는 하지.
무엇도 하기 싫고, 귀찮고, 원하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평온한 상태는 아닌.
삶의 무게에 짓눌리는 느낌.

청소를 마치고 샤워를 하면서 생각한 것.

그렇다면 그 상태를 어떻게 잘 지날 수 있을까.
몇 개의 습관이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의지는 별다른 해결책이 안 되지, 변덕이 너무 심하니까.
그렇지만 습관이라는 관성력은 별 힘을 들이지 않고도 작동이 된다.
여독을 풀기 위해 오늘 아침 늦잠을 더 자려고 했지만, 일어난 것처럼.
일어나서 세면을 하고, 스쿼트 하고, 집 청소를 간단하게 하고, 커피를 내리고, 계란을 삶는 것처럼.
큰 힘을 들이지 않고서 몸이 움직이게 되는 것처럼.
무기력한 몸을 이끌고서 그냥 움직이는 것처럼.
그렇게 삶을 어찌어찌 걷다 보면 어느새 오르막, 내리막을 지나곤 한다.

2024년9월7일

어제 태안에 도착했다.

미리 여행을 시작했지만, 원래 함께 놀자고 했던 친구들 4명도 서울에서 태안으로 이동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서 대화를 했다. 
5일 간 혼자 여행할 때는 입 밖으로 말을 뱉는 때가 많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편의점에서 물건 사고 말하는 '감사합니다' 정도만 있었을 뿐...
신나서 여행 중에 생각한 것들과 본 것들을 들려주는데, 말은 참 신비롭다.

말은 현장성이 지배한다.
내용과 표현방식의 조화, 말하고 있는 장소, 정해진 시간, 함께 있는 사람들의 특징 등등.
말을 하고, 듣는 사람의 태도는 인격을 확인하는 자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말'의 요소 자체를 즐기는 편이기도 하다.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 나도 대답하고, 복수의 인원이 말을 주고 받으면서 대화의 레이어를 하나하나 쌓아가는 과정, 한 편의 작고 소소한 연극이 만들어지는 시간들.

그런데 글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무엇을 쓰고, 어떻게 쓰고, 얼마나 쓰고...
뭐라도 쓰고 있지만, 이게 무엇인지는 아직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여행은 끝나가고 오늘 저녁에는 서울에 있겠다.

2024년9월6일

흔히들 삶은 여행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일상에서는 종종 여행자의 마음을 지키기 어렵기도 하다.
주변의 모든 것이 너무 눈 앞 가까이에서 펼쳐지는 일이어서 그런 걸까.
그럴 때 종종 삶 속의 작은 여행을 떠나도 좋다.

지내던 곳을 떠난 지 5일차다.
하루를 보내는 방법은, 일어나서 글을 끄적이고,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이동할 곳을 찾고, 숙소를 정하고 예약하고, 교통편을 찾고 예매하고, 이동하면서 보이는 것들을 구경하고, 사진 찍고, 생각나는 말을 메모하고, 중간중간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스마트폰도 만지작 거리고, 잠에 들고 다시 다음날 반복한다.
여행자가 되었다는 느낌은 이런 하루의 흐름과 더불어서 사람들의 모습을 발견할 때다.
대부분은 여행이 아닌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일을 하고, 지쳐 보이고, 가까운 사람들과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나만 다른 상태에 놓여있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 외형으로도 뚱뚱한 백팩과 사이드백, 옷은 추레하고, 시선은 두리번두리번...
이렇게 여행자가 되었다는 느낌이 들면, 그제서야 원래의 여행이라고 불리는 나의 삶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나, 를 잘 살게 해야, 다른 것, 이 좋아진다.
우리, 라는 말로 무언가 행해지는 것은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른다.
나, 가 있어야 너, 가 생긴다.
불평불만 가득하고, 짜증이 많고, 게으르고, 패배주의에 젖어있고, 몸과 마음이 아픈, 나, 는 너, 와 함께하는 좋은 삶을 상상할 수 없다.
너, 가 없는 상태의 나, 를 잘 살게 해야 한다.
너, 와 함께 하니까 아무 것도 상관없고 다 괜찮다는 말은 나, 를 속이는 일이다.

내 앞에 나타나는 풍경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도록, 여행자의 마음을 오래 간직해보자.

2024년9월5일

광주에서 진땀 난 썰...

어제 저녁 에어비앤비로 잡은 숙소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서 늦은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를 나왔는데, 어라?
핸드폰을 두고 나왔네?
어? 숙소 비밀번호가 뭐였더라...
0201* 삐삐삐
2010* 삐삐삐
2001* 삐삐삐
0212* 삐삐삐
삐삐삐삐
완전히 잊어버렸다...
하...
호스트와 연락은 에어비앤비 메신저로만 했으니...
나가서 피씨방을 가거나 사람들한테 부탁을 해야 했다.
후... 현대인에게 스마트폰이 없는 세상이란...
그렇게 광주의 밤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길을 잘 모르겠어서 멀리는 못가겠고, 낯선 사람들은 무섭기도 하고, 피씨방은 안 보이고...
그렇게 결국 길을 지나는 한 여성 분에게 민망한 부탁을 하려고 했다.

-제가 이상한 사람은 아닌데... 광주 여행 어쩌고, 에어비앤비 어쩌고, 어플 어쩌고...
-(겁에 질려서) 죄송해요 제가 핸드폰을 잃어버렸어요... (후다닥)
-아...

그래...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겠다... 놀래켜서 죄송하네...
그냥 피씨방이나 물어봐야겠다...
배고프네... (앞에 타코야끼집) 타코야끼나 먹어야지...

타코야끼 먹으면서 사장님께 한 번 더 물어볼까 싶어서 사정을 설명했더니, 역시나 잠시 경계 하시다가, 흔쾌히 핸드폰을 빌려주셨다...
그렇게 메신저를 다시 보니, 비밀번호는.... 0701* 이었다....
왜 이게 생각이 안 나서...
타코집 사장님께 감사의 인사를 듬뿍드리고, 근처 편의점에서 간식도 사다드리고, 숙소로 복귀...
기운이 빠져서 영화 한 편 보고서 늦게 잠에 들고...

눈떠서 핸드폰을 보니 10시 30분... 미친...
체크아웃 시간은 11시였다.
정신없이 씻고, 준비하고 나왔다...

그렇게 광주의 하루가 지나가는데, 여행 계획은 완전히 변경되어서, 목포와 해남은 안녕...
다시 대전으로 돌아간다...ㅎ

2024년9월4일

계획대로 흘러가는 건 많지 않다.
가려고 했던 곳은 멀어지고 새로운 풍경이 찾아온다.
사람들 사이에 사건을 또 생겨나고, 누구는 괴롭고 힘들고 지치겠지.

별다른 계획 없이 홀로 여행을 떠나오니까 순간 순간에 민감해지는 것도 같다.
잘 모르는 곳에서 평소에 하던 행위(식사, 잠, 휴식, 작업 등)을 하는 건 생각보다 수월하지는 않다.
그래도 여기도 저기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원래 가려고 했던 행사가 취소됐다.
앞으로 며칠 간 어디로 흐르려나.

우선 광주로 이동한다.

2024년9월3일

지난 밤, 금산에 도착하고 친구 집에 왔다.
집은 그 사람의 다양한 정신적, 신체적 요소를 감각화한다.
집에서 나는 향기, 벽에 붙은 포스터, 책장의 책들, 사진들, 그림, 가구의 배치, 화장실, 냉장고 등등 모든 곳에 집 주인의 어떤 것이 스며들어 있다.
개성이 담겨있는 집을 방문하면 반갑다.
오늘은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저녁이 되면 누군가의 마음과 실천이 담긴 집이 아니라 상업 숙소에서 잠을 청하게 되는 것이 아쉽다.

2024년9월2일

오랜만에 고속버스를 탔다. 내일은 정말 오랜만에 기차도 탄다. 무궁화호. 기차타고 여기저기 다녀본 게 얼마만일까. 13년도에 내일로 티켓으로 다녔던 기억이 흐릿하다. 14년에도. 어느새 십여년이 지났다. 그때를 지금 추억하듯이 지금을 나중에 추억하겠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풍경이 바뀌고, 어디엔가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