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1월31일

2026년 1월이 끝났다. 한 달간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지난 몇 주간 제주에서 시작하려고 하는 일을 잘 만들어가지 못하는 것 같아서 괴로웠다. 함께 하는 동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남해에서의 기억이 떠올라서 겁도 났는데, 그래도 해볼 수 있는 것들을 더 해보겠다는 의지와, 미래를 상상하면서 기대되는 것들이 버티게 했다. 일차적으로 12개월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 돌아보면 나는 굳이 '일' 자체를 고민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일'이라는 것의 무거움과 심각함을 억지로 회피하면서, 나에게 중요한 건 즐거운 활동, 흥미로운 작업, 색다른 프로젝트로 만족하는 것이라며 '일'을 살살 굴렸는데, 이제부터는 진짜로 일이라는 영역이 내 삶 어디에 어떻게 위치한 것인지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지 않을까 싶다.
일과 함께 사랑도 요동쳤다. 사랑이야 원래 복잡한 것이라고 느끼는데…. 최근의 상황이나 모습을 지켜보면, 그냥, 갑자기, 어느새, 어쩔 수 없이, 만약, 그럼에도, 와 같은 부사가 꼭 필요하다. 사랑은 모호하고 복잡해서 그 장면이 참 흐릿한데, 부사가 달라붙어서 더욱 핵심을 정확하게 하며 해상도를 높인다. 분명해지는 게 항상 좋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요동치는 1월이 끝나고, 2월이다. 바쁜 일정 조금 정리가 됐으니, 일기도 조금 더 성실하게 써봐야겠다. 놓치지 말 것.

2026년1월15일

다리가 아픈 날이다. 하루 종일 서서 회의했고 만 보를 걸었다. 두 다리가 잘 지탱해 주고 있다니 다행이고 다행이다. 그러고 보면 이 두 다리로 참 많은 곳에서 서 있었다. 길 따라 움직이기도, 어떤 곳에 우뚝 서서 주변을 살피기도 했다. 튼튼한 다리도 아닌데 지금까지 잘 기능한 게 용하다.

2026년1월14일

지금껏 살아오면서 문화예술 프로젝트를 해왔고 그 와중에 나름 성장하고 돈이 오고 갔으니 창업 경험을 한 건가 싶기도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렇다고 지금은 잘하고 있나? 바쁜 날들이 지난다. 지난 몇 달간 사업계획서를 쓰고 발표하고 엎고 다시 고민하고 쓰고 발표하고 엎고. 창업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다시 고민하고 쓰고 발표하고 방향을 틀고 다시 쓴다. 도통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 느낌이다. 사실 창업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은 이제 겨우 3~4개월이 된 것 아닌가. 
지난 세월 얕은 경험 때문인지, 훌륭한 결과문 보다는 내가 누군지 무슨 고민을 어떻게 하고, 뭘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객관적으로 알게 되는 순간만 생긴다. 생각보다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게 없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지. 할 수 있을 걸 하자. 할 수 있는 걸 시작하고 잘 만들어 나가자. 그 묵묵한 걸음으로 계속 찾아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지금은 날을 세우고 더 벼리는 시간이니까. 할 수 있는 걸 즐겁게 하자. 

2026년1월3일

새해다. 오랜만에 김포에 왔다. 어머니와 밥을 먹는데, 옛날얘기를 하시는 모습에서 뭔가 아련함이…. 어릴 적 내 모습이 계속 기억나시나 보다. 어릴 때 같이 쇼핑하면 양손에 짐을 든 모습. 외갓집을 가면서 좁은 차에 낑겨 탔던 모습. 아기 때 등에 업히고 통통한 손으로 허우적대는 모습.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엄마 눈에는 훤한가 보다. 어느새 이렇게 컸냐며 신기해 하는 엄마 표정에 주름과 검버섯이 늘었다. 시간이 또 이렇게 흐르는구나. 지난 한 주간 울컥울컥 눈물이 많이 났다. 이 눈물이 어디로 흘러가련지... 그래도 엄마 앞에서는 안 울어서 다행이다. 눈물의 이유를 잘 찾고, 잘 안고 살아야지. 올해는 복을 많이 받고 싶다. 잘 받을 준비를 해야겠다.

2025년12월27일

며칠 전 저녁에 러닝을 했다. 집 주변을 이리저리 뛰다가 저 멀리 있는 초등학교까지 달렸다. 학교 운동장에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슬쩍 구경하면서 운동장 트랙을 돌았다. 한 부부가 앞에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한 번 제치고, 다시 또 제치며 계속 달렸다. 그리고 슬슬 집으로 향할까 싶어서 걷기 시작했다. 앞에 부부가 축구하는 아이들 방향을 바라보니, 축구를 하던 한 아이가 소리쳤다. "엄마 아빠, 데리러 와줘서 고마워요.". 엄마는 "그래." 하고 대답했다.

2025년12월22일

행사장에 스트레스 검사 부스가 있어서 참여했는데…. 점수가 개똥으로 나왔다. 신빙성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걱정도 되고 관리가 필요한 건가 싶어서 집에 오자마자 옷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뛰기 시작했다. 한 30분 뛰니 몸에 열도 오르고 기분도 좋아졌다. 집 와서 씻고 나오니 무쟈게 개운하네…. 억지로 기운 내려고 하지 말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해야, 그제야 뛰나 보다. 자주 뛰자.

2025년12월21일

순간에 휘몰아치는 것들이 잔뜩이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어느새 차가워진 바깥바람을 맞는 것도, 생각난 김에 갑자기 산 기타를 튕기는 것도, 노래를 부르면서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찾는 것도, 비대면으로 수다를 떨며 근황을 묻고 답하는 것도, 읽기로 한 책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접는 것도, 통화로 들리는 목소리를 가늠하며 괜찮다고 답하는 것도, 많은 게 뜻대로 되지를 않는다. 비행기 항공권을 찾아보며 이 날짜 저 날짜를 살펴본다. 그래도 연휴인데 서울에 가는 게 좋을까 그냥 집에 박혀서 푹 쉬어볼까. 쉬는 것마저 뜻대로 되지를 않던데. 아무도 만나지 않고 쉬는 것도, 과연 마음먹는 대로 잘 되려나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면 뭔가 허전해서 또 어떤 유혹을 쫓게 되려나 싶기도 하고…. 항상 이것과 저것 사이를 헤매며 산다. 잠이나 자자.

2025년12월16일

지난주 저녁을 먹었던 햄버거 가게에 우산을 두고 나왔었다. 미리 연락하고, 오늘 저녁 우산을 찾으러 방문했는데, 주인 할머니가 계셨다. 보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얼굴의 주름을 구기며 웃었다. 몸을 돌려 나가려는 나에게 "다시 찾으러 와줘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이게 무슨 뜻?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내가 잃어버렸던 물건을 찾으러 간 게 고마울 일인가. 다시, 찾으러, 와줘서, 고마워요. 찾으러 다시 와주면 고마운 건 할머닌가 우산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교회 앞 벤치에 앉아서 잠깐 쉬었다. 성탄절이 다가오니 교회 외관을 LED 조명으로 조악하게 꾸몄다. 반짝이는 교회, 차가운 벤치 위로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얼마 전까지 빽빽하고 풍성했던 잎이 인상적이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길을 끄는 건 앙상한 나뭇가지보다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은행잎이었다. 천천히 그 위를 걸었다. 푹신한 땅을 걸었다.

2025년12월15일

기다림 또는 인내를 수행하면 성취하게 되는 것이 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가볍게 혹은 쉽게 가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더 무겁게 더욱 끈질기게 더더욱 숨을 죽이고 가다 보면 질주할 수 있다. 어제 임시극장 친구들의 공연 및 전시 <밤 흙 악몽>을 관람했다. 다시금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닿는 그곳을 살짝 엿봤다. 기다림은 누군가를 지치게도 하고, 멀어지게도 하고, 궁금하게도 하고, 유혹하기도 하고, 지겹게도 하고, 의심하게도 하고, 불안하게도 하고…. 이것저것 다 한다. 하지만 결국에 닿는 한 장면, 그 장면에 도달하면 얻게 되는 정화작용이 있다. 모든 걸 해소하게 되는. 갈망이 아닌 완결된 만족감. 오늘 밤에는 제주로 향한다.

2025년12월13일

서울에 왔다. 공기가 차다. 잠을 잘 못자서 피로함을 못이기고 낮잠을 잤다. 밤이 됐다. 내일은 아침부터 바쁘다. 얼른 자야지. 오랜만에 서울이다. 기운차게. 그러고 보니 오늘 밤은 기분이 산뜻하다. 잠이 잘 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