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9월29일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 발표한다는 것은 어렵고도 흥미로운 일이다. 마지막 멘토의 말이 인상 깊다. 누군가 노력한 결과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한꺼번에 만난다는 것은 인상적이고 감사한 일이라는 것. 준비하면서도 배웠고, 지켜보면서도 배웠으니,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겠다.
2025년9월27일
새벽 다섯 시 아니 여섯 시쯤이었으려나. 창은 밝은 회색빛으로 방을 밝혔고, 비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집에 콕 박혀서 지내야지 싶어서, 다시 안대로 눈을 가리고 잠에 빠져들었다. 한참을 더 자고는 핸드폰 진동이 울려서 잠에서 깼다. 정현의 문자였다. 오늘 한림에서 열리는 오픈 스튜디오 행사 소식을 전하며 관심이 있으면 놀러 오라는 초대 연락. 문자를 가만히 보다가 귀를 세우니 빗소리가 잦아들긴 했었다. 날씨를 검색하니 흐리긴 하지만 비가 많이 오지는 않을 듯싶었다. 몸을 일으키고서 점심을 먹고, 빨래를 하고, 다시 날씨를 찾아보니 확실히 비가 더는 오지 않을 것 같았다.
지도 앱으로 길을 볼 수 있게 거치대에 핸드폰을 올려놓고서 스로틀을 당기며 출발했다. 도심을 벗어나 주변 풍경은 풀과 나무로 가득했다. 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는데, 혹시 비가 올까 싶어서 서둘렀다. 30분을 달렸을까. 주변에 목장이 드문드문 보이고 풀 냄새가 났다. 말이 풀을 뜯어 먹고 있는 풍경, 풀이 나무를 덮어버린 원시림 같은 풍경, 짙은 회색의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비집고 나오는 풍경, 여행객 두 명이 천천히 걷는 모습, 버스 정류장에서 외국인이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을 지나니 미술관옆집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관계자분이 반겼다. 미국에서 온 얄비 코노넨의 오픈스튜디오였고, 작가의 말을 통역해 주셨다. 작가는 종이를 오려서 풍경에 설치하고 그 모습을 사진으로 담았다. 현장에서는 직접 제작한 종이 설치물을 볼 수 있었고, 작업실 한 곳에서는 그간 작업했던 사진 아카이빙을 모니터로 볼 수 있었다. 이것저것 말하고 묻고 싶었지만, 영어가 서툴러서 그냥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작업을 보고 나서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분들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는데, 오랜만에 겪는 분위기였다. 작업자들이 모이면 느껴지는 기운이 있다. 대화의 소재도 그렇고, 각자의 머릿속이 복작복작해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반가웠지만 반가운 만큼 그 시간에 온전히 머물렀나 싶기는 했다. 맥주를 주셔서 맥주 마시는 것에 더 집중한 기분이 든다. 언젠가 또 만나서 이야기 나눌 일이 생기겠지. 떠나기 전까지 얄비 코노넨에게 작업을 본 소감이라도 전해야지 싶었는데, 결국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는 길은 어두웠다. 해는 지고, 시골 도로에 차는 없었다. 제법 긴 길이었는데, 아무도 없었고 가로등도 없었다. 주변은 캄캄했는데, 무섭기보다는 신이 났다. 아무도 없는 길을 쌩쌩 달리면서 어두운 풍경에서도 흐릿한 형체를 구경했다. 나무인가 싶은 것들, 펜스인가 싶은 것들, 돌인가 싶은 것들, 풀인가 싶은 것들, 뭔지 모르지만, 그것인가 싶은 것들이 어둠 속에 흐릿하게 자리 잡았다. 큰 도로로 나오자, 차들이 늘었고, 이제 시야에 들어오는 것들의 형체가 또렷해졌다. 집에 도착해서 오늘은 일기를 써야지 싶었는데. 썼다.
2025년9월22일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스쿠터를 타고 다니면, 찬 바람이 느껴진다. 여름을 지나고 가을에 들어선다. 옥상에서 노을이 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검붉은 하늘이 더욱 짙어지면, 도로 위 자동차 노란 전조등과 붉은 후미등이 난립한다. 노란빛과 붉은색. 쌀쌀해서 옷차림을 조금 바꿀 때가 됐나 싶다.
2025년9월20일
휴일에 늘어지는 것 같아서 억지로 억지로 요가하고, 빨래하고, 집 청소하고, 장을 보고, 밥을 해 먹었다. 그리고 영화 한 편을 보려고 했는데, 잠이 쏟아져서 낮잠을…. 두 시간을 넘게 잤다…. 겨우 일어나서 저녁 먹고 중경삼림을 봤다. 낮잠을 꽤 잤는데 밤에 잠이 잘 들려나….
머릿속 드라마에 얼마나 많은 현재의 것을 잃는지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리뷰
샤워가 끝나고 몸의 물기를 마른 수건으로 닦다가 문득 옛 기억이 떠오른다. 연인에게 화를 내거나, 동료를 탓하던 순간들, 모르는 사람과도 시비가 생기면 열을 내는 상황. 지난 기억이 현재의 나에게 던진 게 돌이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다. 맞아 죽지는 않을 테니. 그렇지만 기억의 파동이 죽음 못지않은 고통으로 가슴을 옥죄어 오기도 한다. 부끄러움. 죄책감. 원망. 억울함. 분노. 과거에 미련을 가지고 후회를 한다는 게 그런 거겠지.
하루가 끝나고 잠들기 전에 양치질하면서 거울을 볼 때면 앞으로의 일을 걱정한다. 당장 변변한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돈 많은 부모를 둔 것도 아니니,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까. 대단한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고, 삶의 비전이 너무나 선명해서 주변인들의 정신을 빼놓을 재능을 지니지도 못했다. 아직도 한참이나 부족한 사람인데, 어느새 서른 중반을 지나고 있으니, 과연 시간이 더욱 흘렀을 때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불안하게 잠자리에 눕는다.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비극일지 모르겠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는 드라마에서 벗어나라고 요청한다. 삶을 인과의 관계로, 선후의 순서로, 시간의 축으로 놓지 않을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도, 드라마에 빠진 무의식은 지금의 것들을, 현재를, 나(의식)를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이다. 삶은 과거에 있지도 않고, 미래에 있지도 않다.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다. 드라마에 빠져있는 건 순전히 나의 생각이고 에고이고 감정이지, 진정한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라는 것. 그 '알아차림'이 나의 의식이라는 것. 몸을 씻고 나서, 잠자리에 눕고, 과거와 미래가 여전히 나를 답답하고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진정한 나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차리게 되면, 그 의식의 공간, 그 틈, 그 여백, 그 아무것도 없음이 진정한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25년 9월에 이 책을 만나고 읽었다는 것이 반가웠다.
2025년9월18일
지난 주말에는 진선이 제주도에 놀러 왔다. 비가 오락가락 내려서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맛집 몇 군데를 다니면서 먹 투어는 했다. 첫날에는 집 근처 식당에서 각재기국이랑 멜 튀김, 소주를 안 마실 수가 없어서 몇 잔 마셨다. 둘째 날에는 태풍 쌀국수에 가서 쌀국수랑 짜조. 두 번째 방문인데 역시 맛있더라. 저녁에는 아살람에 가서 후무스랑 케밥. 존마탱... 일요일에는 집 앞 초밥집에 가서 배불리 먹고, 저녁에는 중식집에서 짜장, 만두, 탕수육에 연태 고량주를 들이켰다. 실컷 먹고서 진선은 서울로 복귀. 다시 혼자서 제주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제부터는 센터에서 18개월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교육에 맞춰서 취업을, 창업을 할 수도 있는데, 뭐가 하고 싶어서 제주에 왔으려나. 구체적인 계획 없이 온 게 정답인데, 선택해야 하는 시기라는 게 곤란하게 느껴진다. 특히, 창업에 큰 부담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주변에 함께 교육을 받는 50여 명의 친구들 역시 각자 어떻게 할지 고민도 하지만, 벌써 결정도 하고 확신을 가진 친구도 있는 듯 보인다. 상대적으로 젊은 20대 친구들은 활력이 넘친다.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도 적극적이고, 하고자 하는 것도 힘차게 진행하는 모습이다. 반면에 나이 꽉 차서 끄트머리로 이곳에 온 나는 상대적으로 조금 천천히 움직이게 된다. 거기에 함께 반응하면서 행동하면 금방이라도 지쳐버릴 것 같은걸.
내 리듬이 여기서는 그다지 빠르지 않다는 걸 이제 깨닫기도 한다. 몇 년 전만 해도 추진력 장난 아니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른 호흡을 하고 있나 보다 싶다. 요가를 해서 그런가…. 조금 멈춰서 생각하는 것 같기도, 예전보다 조금 더 주저하면서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면 나도 20대 때는 무작정 한 것들이 많았다. 어딘가로 갑자기 떠나기도 하고, 재밌어 보이면 대책 없이 시작하기도 하고…. 아니 지금도 여전히 그래서 여기 온 거려나…. ㅎ 그래도 지금은 조급한 마음이 들면 휘둘리지 않으려고 하는 의식이 생겼다는 것이 다행인 점이다. 지난 시간을 기억해 보면 그때는 참 많이도 휘둘렸다 싶다. 그 맛에 사는 재미가 있기도 했었고. 내일은 서류 작업을 한참 할 것 같은데, 머리 좀 싹 비우고 해봐야겠다.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다.
2025년9월11일
아침에 삶은 계란 하나 오렌지 하나를 먹었다. 일리커피머신을 당근으로 구매했는데, 캡슐커피를 텀블러에 담아서 교육 참여. 점심에는 파스타를 해 먹었다. 다시 커피 한잔을 내려서 오후 교육에 참여. 저녁으로는 마파두부를 싸 왔다. 매일 배우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신경 써야 하지만, 먹는 것만큼 신경 써야 하는 게 없는 것 같다. 잘 먹어야 잘하게 되는 것 같다. 내일은 뭐를 먹으려나. 집에 먹을 게 떨어졌는데, 들어가면서 장을 봐야 할까.
2025년9월10일
요가 매트를 주문했는데, 도착했다. 올리브색 가네샤 요가 매트와 블록까지. 조용한 집에 매트를 깔아놨는데, 이제 진짜 아침마다 요가해야지 했다. 처음 요가를 했던 때가 생각났다. 군대를 전역하고 호주에 가기 전이었는데, 김포 본가 집 근처에 나무 요가 라는 요가원이 있었다. 왜 요가를 하겠다고 생각했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다 두 달 정도 다녔나. 지금 생각하니 선생님이 막 좋았다고 말하긴 어렵지만, 그때 그 시공간이 계속 기분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그 이후로 요가를 한 기억은 없다. 이후 대학교에 입학하고 신입생 교양수업으로 요가가 있었지만, 대충했고, 남해를 가서 유튜브를 보면서 깔짝깔짝했다. 본격 요가원에서 수련한 건 지난 서울에서 지낼 때다.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요가원을 다니면서 요가를 했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제주에서 요가원을 가지는 않을 것 같다. 이제부터는 혼자서 하는 시기를 가져야지 싶기도 하고. 서울을 떠난 것에 아쉬운 것들 중 하나는 잘 맞았던 요가원을 다니지 못한다는 것이다.
2025년9월9일
생성형 ai 교육을 한다고 해서 기대를 갖고 들었는데... 콘텐츠 만드는 건 하나도 없고 무슨 개발자 된 것처럼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신기한 걸. 챗GPT에 쓸 프롬프트 방법론을 배우고 적용해 보고, MCP(Model Context Protocol)라는... 뭐 커서(Cursor)프로그램을 받아서... 환경 세팅을 하고... 제미나이가 로컬 컴퓨터에 접근이 가능한 어쩌고저쩌고... 교육을 받고서 실습을 했다. 직접 해보니 우왕... 신기하다... 했지만, 실제로 어떻게 적용이 가능하고 활용이 가능한지는 고민이 필요한 듯.... 노션API도 연결이 된다고 해서 끙끙대면서 연동을 시키니, 우왕 더 신기하다... 하지만 여전히 적응이 필요한 듯... 어렵다.
그런데 결과물들을 만나니, 정말 일할 때 효율이 올라가는 게 당연하겠다는 느낌을 받는다. 다양한 관점에서 논리구조를 짜는 경우는 그 속도와 수준이 굉장했다. 아이디어를 내는 거나, 보고서를 쓰거나, 데이터를 분류 정리하고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작업은... 이제 사람이 없어도 가능하겠다 싶었다.
이런 시대에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까. 적극적으로 AI를 다뤄보니 신기한만큼 고민도 생긴다.
2025년9월8일
본격 교육 입소일이었다. 앞으로 18개월 간의 제주 생활과 일이 진행된다는 생각이 까마득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 한편으로는 짧은 시간이 되리라는 것도 생각한다. 한 달간은 임시로 조직된 팀에서 제주 원물을 이용한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작업을 할 텐데, 다투지 않고 즐겁게 한 달이 마무리되기를 바라게 된다. 오랜만에 팀 작업인데, 나도 스트레스받지 않고 잘 어울려 봐야지…. ㅎ 제주도 날씨가 참 오락가락한다. 비가 오다가, 해가 떴다가. 스쿠터 타고 이동하다 보니 우비를 입었다가 벗었다가….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여름이 지나면 조금 나아지려나.
9월1주
집 정리하느라 정신없는 한 주…. 맨몸만 들고 와서 텅텅 빈 집을 채우는 중이다. 집을 보지도 않고 서울에서 계약했었다. 막상 와서 보니 괜찮네? 그래도 내려오기 전에 긴장을 많이 했다. 너무 긴장돼서 밤에 잠을 못 자기도 했고, 진선한테 투정을 부리기도 했었는데, 오고 나니까 자연스레 정해지는 것들이 있다. 물론 힘들긴 하지만…. 쿠팡과 당근을 계속 들여다보면서 필요한 것을 찾고, 사고, 택배를 받으면 정리한다. 다이소를 가서 저렴하게 생필품을 구매하고, 집 근처 마트에 가서는 간단하게 해 먹을거리를 사 온다. 냉장고가 생기고, 책상이 생기고, 식탁이 생기고, 옷장이 생기니, 잡동사니 짐이 정리가 하나둘 되어간다.
첫 게스트로 제주 사는 수려가 방문했는데, 온 집안이 박스에 정리 안 된 물건들이 잔뜩이라 민망…. 계속 정리해야지. 수려가 온 날 저녁에는 짧은 공연을 봤다. 만마력이라는 공간인데, 안무가가 운영하는 곳인가 보다. 움직임 워크숍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이번에 본 공연은 움직임을 바탕으로 쓴 글을 낭독하고, 제주 서문시장 인근 산책을 안내해 주는 식이었다. 제주의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시간이었는데, 현재 교육 받는 프로그램에서도 참고될 수 있는 제주의 풍경을 새롭게 만난 듯싶었다. 9월의 시작은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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