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워가 끝나고 몸의 물기를 마른 수건으로 닦다가 문득 옛 기억이 떠오른다. 연인에게 화를 내거나, 동료를 탓하던 순간들, 모르는 사람과도 시비가 생기면 열을 내는 상황. 지난 기억이 현재의 나에게 던진 게 돌이 아니라는 것이 다행이다. 맞아 죽지는 않을 테니. 그렇지만 기억의 파동이 죽음 못지않은 고통으로 가슴을 옥죄어 오기도 한다. 부끄러움. 죄책감. 원망. 억울함. 분노. 과거에 미련을 가지고 후회를 한다는 게 그런 거겠지.
하루가 끝나고 잠들기 전에 양치질하면서 거울을 볼 때면 앞으로의 일을 걱정한다. 당장 변변한 직장 생활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돈 많은 부모를 둔 것도 아니니,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할까. 대단한 기술을 가진 것도 아니고, 삶의 비전이 너무나 선명해서 주변인들의 정신을 빼놓을 재능을 지니지도 못했다. 아직도 한참이나 부족한 사람인데, 어느새 서른 중반을 지나고 있으니, 과연 시간이 더욱 흘렀을 때의 삶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불안하게 잠자리에 눕는다.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은 비극일지 모르겠다.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는 드라마에서 벗어나라고 요청한다. 삶을 인과의 관계로, 선후의 순서로, 시간의 축으로 놓지 않을 것을 강력하게 권한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게도, 드라마에 빠진 무의식은 지금의 것들을, 현재를, 나(의식)를 잃어버리게 한다는 것이다. 삶은 과거에 있지도 않고, 미래에 있지도 않다. 언제나 지금 이 순간이다. 드라마에 빠져있는 건 순전히 나의 생각이고 에고이고 감정이지, 진정한 내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리라는 것. 그 '알아차림'이 나의 의식이라는 것. 몸을 씻고 나서, 잠자리에 눕고, 과거와 미래가 여전히 나를 답답하고 고통스럽게 하더라도, 그것이 나의 진정한 나의 삶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알아차리게 되면, 그 의식의 공간, 그 틈, 그 여백, 그 아무것도 없음이 진정한 나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25년 9월에 이 책을 만나고 읽었다는 것이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