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7월22일

오랜만에 새벽에 일어났고, 오랜만에 요가원에 다녀왔다. 한 주 동안 생활이 엉망이었는데, 오늘 다시 또 마음을 먹는다. 내일부터는 다시 아침형 인간으로 태어나리라….

2025년7월21일

어제는 여기저기 많이 다녀왔다. 낮에는 연희동으로 가서 디디가 초대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어튠먼트?라는 명상 비슷한 프로그램이었는데, 행사 장소에 가니 위치가 너무 좋더라. 궁동근린공원 근처였는데, 언덕으로 쭉 올라서 도착한 건물의 3층이었다. 커다란 창밖으로 도심 풍경과 맑은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열댓 명의 참가자와 주최자들이 있었고, 그중에 반은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패션과 분위기는 일반적인 어르신들 같지 않았는데, 대화를 나눠보니 더 그러더라. 젊은 시절 미국에서 히피 생활하셨던 분, 제주도에 공동체를 꾸린 분, 양평에서 문화원을 운영하시는 분, 모두 시대의 어른 냄새가 잔뜩 나더라. 몇 시간에 걸친 대화와 경험은 어찌저찌 마무리됐고, 저녁에는 사당으로 가서 성기웅 선생님과의 저녁 식사를 했다. 대학생 때 성기웅 연출의 연극을 처음 봤던 기억이 아직도 있는데, 이렇게 직접 만나서 얘기를 나눠본다는 것이 참 인상적이더라. 사람 인연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다 정말…. 자리 만들어준 규성에게 고맙다. 연극 교육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듣고, 극작에 대한 고민과 조언도 들었다. 그러면서 술을 엄청나게 마셨네…. 지나고 생각해 보니 실언을 제법 했던 것도 같다. 술 취하면 항상 이 모양이란 말이야…. 적당히 마셔야지…. 그러고 집에 들어오니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정신 차리고 이제 일상 루틴을 지켜보자~~~

2025년7월20일

며칠간 무기력했다. 늦잠은 물론, 밥도 제때 안 먹고, 요가는커녕 작업도 안 했다. 이런 때가 종종 찾아올 수 있지. 그럴 수 있는데, 한편으로는 아직도, 언제까지 이러는 걸까 싶다. 가까운 사람들을 생각하고 나를 생각한다. 소형은 어제 생일이었다. 지난번에 통화를 하면서 근황을 나눴는데 잘 지내고 있더라. 그만큼 나는 나로서 잘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서 조금 부끄러웠다. 며칠 전에는 은송네 지내는 선우가 집을 떠난다고 해서 작은 모임을 가졌다. 새로운 친구도 만났고 오랜만에 본 친구도 만났다. 누구는 유학을 떠나고, 누구는 워홀을 간다고 하고, 누구는 여행을 간다고 하고, 누구는 학원 다닌다고 한다. 다들 멋지게 각자의 삶을 꾸리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웃고 떠드는 모습에서 아쉬움은 보이지 않았다.

어제부터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요가원은 가지 않더라도 집에서 매트를 깔고 올라서 몸을 풀어줬다. 책 모임도 있으니 읽던 책을 펼쳐서 다시 읽기 시작하고, 끼니를 위해 요리를 한다. 진선의 제안으로 집 청소를 싹 했다. 먼지를 털고, 밀린 빨래를 하고, 환기하고, 설거지를 하고, 쓸고, 닦았다.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밀린 작업과 앞으로 일정도 확인했다. 오늘은 오늘이지. 오늘은 어제가 아니라 오늘이다.

2025년7월17일

어젯밤 잠들기 전에 속이 안 좋았는데, 푹 자고 일어나니 괜찮아졌다. 역시 잠이 보약이구나. 진선이 출근을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조금 게으른 생활을 하고 있다. 누군가가 옆에 있을 때와 없을 때, 생활 속 긴장감이 달라진다. 자유를 누리면서 자유로움을 완성하는 것은 어려운 법이다.

세 번째 죽음

술에 진탕 취해서 집에 돌아온 밤이었다. 분명 술자리에서는 취기로 몸이 붕~ 뜰 것도 같다 싶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니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이 전부 무거워서 거실 바닥에 두 다리가 꼭 달라붙은 기분이었다. 죽기 전까지는 이 무거운 몸뚱어리 누가 관리하나 내가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비틀거리며 세면을 했다.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집 안에는 세면대에 흐르는 물소리만 흘렀다. 세상의 정적을 뚫고 흐르는 물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물 낭비는 안 되지. 해롱거리면서 후다닥 씻고 침대에 누워서 뭔지도 모를 오늘의 것들을 전부 뒤로 미루며 잠에 빠졌다. 신촌극장에서 <사물함>을 보고 온 날, 그 하루의 마지막이었다.

임시극장 친구들의 공연 소식을 듣고 예매를 했었다. 공연 날이 됐고, 스쿠터를 타고서 극장을 향하는데, 여름 무더위가 실감 났다. 햇살이 피부를 따갑게 찔렀다. 아니 어떻게 동남아보다 한국이 더 덥냐…. 이 지구가 망할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싶었는데, 내 생에 망할지는 미지수였다. 이왕이면 인류의 마지막을 목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뜨거운 기운 속에서 도로를 둘러보니 차가 잔뜩이었다. 이런 와중에 나도 탄소 배출하는 스쿠터를 몰고 있으니 이렇게 덥지 싶었다. 늦지 않게 공연장 앞 골목에 도착했다. 신촌극장은 세 번째 방문이었는데, 올 때마다 이 골목길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제는 먼 기억이 되어가지만, 한밤에 서로 설레던 친구와 이 골목을 산책하던 때가 떠올라서 아련하기도 했다. 극장을 향하는 길 전부가 공연이 되는 걸까.

<사물함>
4층 옥탑에 있는 극장으로 들어가니, 무대 가운데 상자 하나를 놓고 관객과 배우 모두가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객석과 상자 사이를 가르는 전선과 조명도 동그랗게 늘어진 모습이 좋아서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데, 어느새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는 어두워졌다. 천장에 노란 조명이 은은하게 상자를 비췄다. 관객 사이사이에 함께 앉은 배우 세 명은 따로 또 같이 발화하면서 항해하듯 이야기를 읊었다. 1. 학생과 교수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읊고, 2 옛 설화를 읊고, 3. 학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교수의 마음을 읊었다. 희곡을 쓴 고연옥 작가와 이제는 고인이 된 그의 제자(이자 친구) 이은용 작가의 이야기였다. 애정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과 함께 자연스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장면1
옷차림이 가벼웠던 걸로 기억하는 것을 보아 계절은 여름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과 외식하고서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나는 배가 잔뜩 불러서 천천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점점 셋의 몸은 멀어졌지만, 그게 불안하거나 싫지 않았다. 발걸음이 나보다 빠른 부모님과 너무 멀어지지 않게 걸음 속도를 조절했다. 집 근처에는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있었다. [우리 동네 장례식장 결사반대]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서는 차분하게 혼잣말을 흘렸다. '생과 사가 다 우리 곁에 있는 걸 텐데….'

장면2
학교 앞에서 자취하는 시절에 본가를 자주 방문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왜 그날은 집에 가게 되었을까. 아무런 이유도 없었는데 왜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늦은 밤 본가로 향했다.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했으니, 부모님은 잠들어 있었고, 나도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잠에 들었다. 시간이 흘렀다. 새벽 2시? 3시? 한참 잠에 빠진 고요하고 깊은 밤이었다. 날카로운 비명이 방문을 뚫고서 귀를 찔렀고, 나는 놀라서 잠에서 깼다. 심장이 두근댔다. 이어서 어머니의 갈라진 목소리가 괴성으로 들려왔다. '곧 가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내려가서 뵈려고 했는데.' 거실로 나가니 어머니는 바닥에 쓰러져서 오열하고 있었고, 아버지도 당황하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형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어머니가 현수막을 보고 '죽음'을 생각하는 것과, 당신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듣고서 후회하고 고통을 느끼는 것.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죽음은 분명히 서로 달랐다. 나는 왜 <사물함>을 관람하고서 이 두 번의 죽음이 떠올랐을까. 앞선 '죽음들'은 (1) 죽음이 주변에 없을 것처럼 살지 말 것. (2) 찾아올 죽음을 거리 두어 생각하지 말고, 온몸으로 느낄 것. 을 요청했고, 자연스레 이 요청은 <사물함>을 보고 난 후 이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갈무리하며 가늠하게 하는 내 나름에 태도가 됐다. 지난 '죽음들'이 나에게 없었다면, 이 연극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진정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은 적이 나에게 있었나. 아직 없다. 그때가 찾아오면 나는 그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흘려보낼 수 있을까. 어쩌면 <사물함>은 언젠가 나에게 찾아올 죽음을 준비하라고 말하는 '세 번째 죽음'일지도 모르겠다. 그 준비를 위해 이 연극은 끝없이 '죽음'을 데려왔다. 그리고 극 중 교수는 자신의 친구이자 제자가 세상을 떠났지만 사라지지 않고 이 세계를 초월한 존재로서 세상에 머물기를 바랐다. 여전히 머물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돕고, 때로는 벌하고, 그렇게 계속해서 우리 옆에 존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했다. 더 이상 속세의 고통과 시련에 떠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했다. '죽음' 이후에도 어떤 작용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했다.

<사물함>은 은은하게 빛나는 상자 앞 캠프파이어고, 모두가 동그랗게 모여서 마음을 달래는 심리 상담이고, 세상을 초월한 존재를 탄생시키는 구전의 현장이었다. 이렇게까지 쓰고 나니까 이후 나에게 찾아올 죽음에 정말로 <사물함>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

2025년7월7일

분명히 오늘은 일찍 일어나서 글도 쓰고 요가도 해야지 하면서 어젯밤 침대에 누웠다. 일어나니까 11시... 여독이 있긴 한가보다... 늦게 시작한 하루를 잘 보내야지 했는데, 어느새 다시 잘 시간... 여독이 있긴 한가보다... 언제까지 있나 보자... 내일은 일찍 일어나야지.

2025년7월6일

인천공항, 푸트라자야, 퍼스, 발리, 하노이를 거쳐서 여행을 끝내고 오늘 아침 8시 다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원래는 어제 도착해야 했지만, 비행기를 놓친 이슈로…. 하루 밀어서 더 놀고 오늘 도착. 오늘 오후에 안산에서 열리는 극작가 아고라 행사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가…. 오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집 와서 짐 풀자마자 안산행…. 개피곤하다~~~~ 
지난 보름 참 잘 놀았다. 다시 돌아온 한국에서도 잘 놀아봐야지 싶다. 물론 할 일도 잘하면서. 여행이 잊히기 전에 관련한 장면이나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싶은데…. 하루하루 사는 속도를 일기가 못 따라간다…. 일단 피곤하니까 내일 생각하자ㅎㅎ

타락과 구원

예전에 ㄴㄹ가 <그리스인 조르바>의 문장을 인용하면서 들려준 얘기가 떠오를 때가 있다. 정확한 문장은 모르지만 대충 들었던 내용을 더듬어서 기억하자면 이렇다. '나는 타락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것보다 사랑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을 정도로 타락했다.' 나는 바다에 들어가는 것보다 바다에 관한, 바다를 소재로 글 쓰는 것이 더 좋아져 버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문장에서 언급한 '타락'과 내 상태가 과연 가까운 감각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다만, 이것이 스스로를 파괴할 정도로 강력하지는 않을지라도 지난 과거와 지금의 나를 비교했을 때, 어느 정도는 '타락'한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타락한 영혼은 어디로 흐르는 걸까. 구원은 누구에게 언제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 구원을 기대할 수 있을까. 이번 여행에서 아직 한 번도 바다에 들어간 적이 없다. 7월 4일이 되면 비행기를 타고 원래의 곳으로 향한다. 과연 남은 이틀간 바다에 들어갈 수 있을까.

처음 바다에 들어간 기억은 중학생 때다.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강화 동막 해수욕장을 향했다. 뻘이 있으니, 바닷물은 혼탁했다. 그런 바다에서도 물장구를 치고, 헤엄을 치고, 튜브를 타고 놀았다. 한 친구는 숙소에서 스크램블에그를 해주기도 했다. 당시 바다의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냄새 역시 모르겠다. 온도도 기억에 남지 않았다. 차가웠을까. 미지근했나. 피부도, 혀도, 코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 바다를 나는 무엇으로 기억하고 있나. 눈으로 보았던 장면이 멋대로 편집되어 머릿속에 떠다닌다. 차라리 다 잃으면 좋을 것을, 눈은 저 혼자 비겁하게 찌꺼기를 남겼다. 이런 찌꺼기들이 쌓이고 쌓여서 지금의 나를 타락시킨 것일지 모른다. 차라리 모든 것을 상실하면 다시 처음부터 느끼면 될 텐데.

추억은 현재의 길을 잃게 한다는 점에서 타락이고, 상실은 나를 새롭게 걷게 하는 점에서 구원이다. 찌꺼기처럼 쌓인 추억은 끊임없이 상실되어야 할 것 아닐까. 하지만 추억은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남으며, 상실은 고독한 감정만 부추기니, 나는 영원히 타락하는 존재일지 모르겠다. 바다를 사랑으로 읽어도 같은 기분이다.

2025년7월2일

발리 2일 차. 더위에 피곤해지면, 작은 수영장에 들어간다. 확실히 물에 들어가면 정신이 또렷해진다. 집에 수영장이 있다는 건 좋은 거구나.

어제저녁은 Guan Yin Yoga Shala에서 빈야사 수업을, 오늘 아침에는 Joga Yoga에서 하타 수업을 들었다. 오랜만에 수업을 들으니까 혼자 할 때보다 배로 힘들다…. 수업 자체는 서울에서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껴졌는데, 차이라면 확실히 가동을 더 요구하고 핸즈온도 더 적극적으로 한다. 빠르게 자세를 잡게 하고 유지하게 도와주는 느낌. 속도감도 한국보다는 더 있는 것 같다. 근력을 적극적으로 쓰는 플로우 느낌. 그래서 인가…. 겨우 이틀 했다고 온몸 구석구석 근육이 다 아프다…. 오늘 저녁은 인요가 수업을 들을 예정인데 잘 풀어줘야겠다.

발리는 주로 시끄럽고 종종 고요하다.

핫한 지역이라고 해서 그런가 동서양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붐비고 도로는 스쿠터가 빽빽하다. 한국과는 다르게, 뭔가 게임에 들어온 것처럼 운전하게 된다. 아무래도 차보다 스쿠터가 많아서인 듯 싶다. 오늘 요가 선생님도 천천히 달리라고, 여기 사람들 다 정신 나간 듯 운전한다고 했는데, 조심해야지. 

2025년7월1일

어젯밤에 십여 일 간의 퍼스 여행을 마치고 발리로 이동했다. 자정이 넘어서야 발리 숙소에 도착했는데, 고생고생해서 이동을 마친 우리(진선과 두겸)는 그 늦은 시간에 맥주와 발리 음식을 배달시켜 먹었다. 도착한 숙소는 작은 풀장을 마당에 두고, 더블 베드룸 두개, 거실과 부엌은 풀장 옆에 야외였다. 이동하면서 퍼스에서의 쌀쌀한 날씨는 점점 잊히고 후덥지근한 동남아에 적응해야 했는데, 바로 수영장이 눈에 보이니 곧바로 몸을 던져버렸다. 시원한 물에 더위와 피로가 가시니, 음식과 맥주 맛이 기가 막혔다. 늦은 새벽 피곤함에 절어서 잠에 빠지고, 일어난 발리의 아침. 퍼스에서는 새소리가 그렇게 많이 들렸는데, 오늘 아침에 개 짖는 소리가 온 동네에서 났다. 아직 밖을 나가지 않았지만, 몇 시간 만에 정서가 휙 바뀌어 버려서 하루는 적응하는 데 보낼 것 같다.
열흘이 넘는 퍼스에서의 시간이 까마득하다. 비가 내렸고, 날이 갰고, 새가 지저귀었고, 술을 잔뜩 마셨고, 음식을 잘해 먹었고, 식당에서 먹고 마시고 떠들었고, 드라이브를 했고, 보드게임을 했고, 거리를 거닐었고, 공원에 누워 하늘을 봤고, 동물과 식물을 살폈고, 친구들과 자연을 만났다. 친구들과 인사하며 다시 만날 날을 생각하고, 그렇게 다시 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곳에 와버렸다.
여행을 오고 나면 글쓰기와 요가 시간을 잘 지키려고 다짐했는데, 와르르 무너졌다…. 그래도 발리에 왔으니 매일 요가하러 가는 재미가 있겠지 싶다. 시간은 쏜살같고, 체력은 중요하다…. 운동만이 살길. 여유롭게 작업하는 마음과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마음이 아직도 잘 섞이지 않는 것 같은데, 방법이 과연 있는 걸까 싶다. 그냥 새로움과 혼란, 불규칙과 희열, 자극과 혼돈을 끝없이 마주하는 게 여행이라는 것인가 생각한다. 발리에서는 뭘 만나게 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