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죽음

술에 진탕 취해서 집에 돌아온 밤이었다. 분명 술자리에서는 취기로 몸이 붕~ 뜰 것도 같다 싶었는데, 집으로 돌아오니 머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이 전부 무거워서 거실 바닥에 두 다리가 꼭 달라붙은 기분이었다. 죽기 전까지는 이 무거운 몸뚱어리 누가 관리하나 내가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비틀거리며 세면을 했다. 새벽 3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집 안에는 세면대에 흐르는 물소리만 흘렀다. 세상의 정적을 뚫고 흐르는 물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물 낭비는 안 되지. 해롱거리면서 후다닥 씻고 침대에 누워서 뭔지도 모를 오늘의 것들을 전부 뒤로 미루며 잠에 빠졌다. 신촌극장에서 <사물함>을 보고 온 날, 그 하루의 마지막이었다.

임시극장 친구들의 공연 소식을 듣고 예매를 했었다. 공연 날이 됐고, 스쿠터를 타고서 극장을 향하는데, 여름 무더위가 실감 났다. 햇살이 피부를 따갑게 찔렀다. 아니 어떻게 동남아보다 한국이 더 덥냐…. 이 지구가 망할 날도 얼마 안 남았다 싶었는데, 내 생에 망할지는 미지수였다. 이왕이면 인류의 마지막을 목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뜨거운 기운 속에서 도로를 둘러보니 차가 잔뜩이었다. 이런 와중에 나도 탄소 배출하는 스쿠터를 몰고 있으니 이렇게 덥지 싶었다. 늦지 않게 공연장 앞 골목에 도착했다. 신촌극장은 세 번째 방문이었는데, 올 때마다 이 골목길이 마음에 쏙 들었다. 이제는 먼 기억이 되어가지만, 한밤에 서로 설레던 친구와 이 골목을 산책하던 때가 떠올라서 아련하기도 했다. 극장을 향하는 길 전부가 공연이 되는 걸까.

<사물함>
4층 옥탑에 있는 극장으로 들어가니, 무대 가운데 상자 하나를 놓고 관객과 배우 모두가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객석과 상자 사이를 가르는 전선과 조명도 동그랗게 늘어진 모습이 좋아서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데, 어느새 공연이 시작되고 무대는 어두워졌다. 천장에 노란 조명이 은은하게 상자를 비췄다. 관객 사이사이에 함께 앉은 배우 세 명은 따로 또 같이 발화하면서 항해하듯 이야기를 읊었다. 1. 학생과 교수가 주고받는 이야기를 읊고, 2 옛 설화를 읊고, 3. 학생의 죽음을 애도하는 교수의 마음을 읊었다. 희곡을 쓴 고연옥 작가와 이제는 고인이 된 그의 제자(이자 친구) 이은용 작가의 이야기였다. 애정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이런 생각과 함께 자연스레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장면1
옷차림이 가벼웠던 걸로 기억하는 것을 보아 계절은 여름이었던 것 같다. 부모님과 외식하고서 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나는 배가 잔뜩 불러서 천천히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점점 셋의 몸은 멀어졌지만, 그게 불안하거나 싫지 않았다. 발걸음이 나보다 빠른 부모님과 너무 멀어지지 않게 걸음 속도를 조절했다. 집 근처에는 현수막이 커다랗게 걸려있었다. [우리 동네 장례식장 결사반대]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서는 차분하게 혼잣말을 흘렸다. '생과 사가 다 우리 곁에 있는 걸 텐데….'

장면2
학교 앞에서 자취하는 시절에 본가를 자주 방문하지는 않았었다. 그런데 왜 그날은 집에 가게 되었을까. 아무런 이유도 없었는데 왜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었는지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 늦은 밤 본가로 향했다.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했으니, 부모님은 잠들어 있었고, 나도 조용히 방에 들어가서 잠에 들었다. 시간이 흘렀다. 새벽 2시? 3시? 한참 잠에 빠진 고요하고 깊은 밤이었다. 날카로운 비명이 방문을 뚫고서 귀를 찔렀고, 나는 놀라서 잠에서 깼다. 심장이 두근댔다. 이어서 어머니의 갈라진 목소리가 괴성으로 들려왔다. '곧 가려고 했는데, 이번에는 내려가서 뵈려고 했는데.' 거실로 나가니 어머니는 바닥에 쓰러져서 오열하고 있었고, 아버지도 당황하면서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으니, 형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어머니가 현수막을 보고 '죽음'을 생각하는 것과, 당신 아버지의 '죽음' 소식을 듣고서 후회하고 고통을 느끼는 것. 첫 번째 그리고 두 번째 죽음은 분명히 서로 달랐다. 나는 왜 <사물함>을 관람하고서 이 두 번의 죽음이 떠올랐을까. 앞선 '죽음들'은 (1) 죽음이 주변에 없을 것처럼 살지 말 것. (2) 찾아올 죽음을 거리 두어 생각하지 말고, 온몸으로 느낄 것. 을 요청했고, 자연스레 이 요청은 <사물함>을 보고 난 후 이 이야기에 대한 생각을 갈무리하며 가늠하게 하는 내 나름에 태도가 됐다. 지난 '죽음들'이 나에게 없었다면, 이 연극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수도 있겠다 싶다.

그러나 진정으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겪은 적이 나에게 있었나. 아직 없다. 그때가 찾아오면 나는 그 죽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흘려보낼 수 있을까. 어쩌면 <사물함>은 언젠가 나에게 찾아올 죽음을 준비하라고 말하는 '세 번째 죽음'일지도 모르겠다. 그 준비를 위해 이 연극은 끝없이 '죽음'을 데려왔다. 그리고 극 중 교수는 자신의 친구이자 제자가 세상을 떠났지만 사라지지 않고 이 세계를 초월한 존재로서 세상에 머물기를 바랐다. 여전히 머물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돕고, 때로는 벌하고, 그렇게 계속해서 우리 옆에 존재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했다. 더 이상 속세의 고통과 시련에 떠밀리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했다. '죽음' 이후에도 어떤 작용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했다.

<사물함>은 은은하게 빛나는 상자 앞 캠프파이어고, 모두가 동그랗게 모여서 마음을 달래는 심리 상담이고, 세상을 초월한 존재를 탄생시키는 구전의 현장이었다. 이렇게까지 쓰고 나니까 이후 나에게 찾아올 죽음에 정말로 <사물함>을 떠올리게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