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12월27일

며칠 전 저녁에 러닝을 했다. 집 주변을 이리저리 뛰다가 저 멀리 있는 초등학교까지 달렸다. 학교 운동장에는 초등학생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슬쩍 구경하면서 운동장 트랙을 돌았다. 한 부부가 앞에서 천천히 걷고 있었다. 한 번 제치고, 다시 또 제치며 계속 달렸다. 그리고 슬슬 집으로 향할까 싶어서 걷기 시작했다. 앞에 부부가 축구하는 아이들 방향을 바라보니, 축구를 하던 한 아이가 소리쳤다. "엄마 아빠, 데리러 와줘서 고마워요.". 엄마는 "그래." 하고 대답했다.

2025년12월22일

행사장에 스트레스 검사 부스가 있어서 참여했는데…. 점수가 개똥으로 나왔다. 신빙성이 얼마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걱정도 되고 관리가 필요한 건가 싶어서 집에 오자마자 옷 갈아입고 밖으로 나가 뛰기 시작했다. 한 30분 뛰니 몸에 열도 오르고 기분도 좋아졌다. 집 와서 씻고 나오니 무쟈게 개운하네…. 억지로 기운 내려고 하지 말고,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생각해야, 그제야 뛰나 보다. 자주 뛰자.

2025년12월21일

순간에 휘몰아치는 것들이 잔뜩이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투성이다. 어느새 차가워진 바깥바람을 맞는 것도, 생각난 김에 갑자기 산 기타를 튕기는 것도, 노래를 부르면서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찾는 것도, 비대면으로 수다를 떨며 근황을 묻고 답하는 것도, 읽기로 한 책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접는 것도, 통화로 들리는 목소리를 가늠하며 괜찮다고 답하는 것도, 많은 게 뜻대로 되지를 않는다. 비행기 항공권을 찾아보며 이 날짜 저 날짜를 살펴본다. 그래도 연휴인데 서울에 가는 게 좋을까 그냥 집에 박혀서 푹 쉬어볼까. 쉬는 것마저 뜻대로 되지를 않던데. 아무도 만나지 않고 쉬는 것도, 과연 마음먹는 대로 잘 되려나 모르겠다. 그런데 그렇게 혼자면 뭔가 허전해서 또 어떤 유혹을 쫓게 되려나 싶기도 하고…. 항상 이것과 저것 사이를 헤매며 산다. 잠이나 자자.

2025년12월16일

지난주 저녁을 먹었던 햄버거 가게에 우산을 두고 나왔었다. 미리 연락하고, 오늘 저녁 우산을 찾으러 방문했는데, 주인 할머니가 계셨다. 보관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다. 할머니는 얼굴의 주름을 구기며 웃었다. 몸을 돌려 나가려는 나에게 "다시 찾으러 와줘서 고마워요."라고 했다. 이게 무슨 뜻? 계속 머릿속에 맴돈다. 내가 잃어버렸던 물건을 찾으러 간 게 고마울 일인가. 다시, 찾으러, 와줘서, 고마워요. 찾으러 다시 와주면 고마운 건 할머닌가 우산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인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작은 교회 앞 벤치에 앉아서 잠깐 쉬었다. 성탄절이 다가오니 교회 외관을 LED 조명으로 조악하게 꾸몄다. 반짝이는 교회, 차가운 벤치 위로는 커다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있다. 얼마 전까지 빽빽하고 풍성했던 잎이 인상적이었는데, 이제는 대부분 바닥으로 떨어졌다. 눈길을 끄는 건 앙상한 나뭇가지보다 바닥에 수북하게 쌓인 은행잎이었다. 천천히 그 위를 걸었다. 푹신한 땅을 걸었다.

2025년12월15일

기다림 또는 인내를 수행하면 성취하게 되는 것이 있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가볍게 혹은 쉽게 가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더 무겁게 더욱 끈질기게 더더욱 숨을 죽이고 가다 보면 질주할 수 있다. 어제 임시극장 친구들의 공연 및 전시 <밤 흙 악몽>을 관람했다. 다시금 기다리고 기다리면서 닿는 그곳을 살짝 엿봤다. 기다림은 누군가를 지치게도 하고, 멀어지게도 하고, 궁금하게도 하고, 유혹하기도 하고, 지겹게도 하고, 의심하게도 하고, 불안하게도 하고…. 이것저것 다 한다. 하지만 결국에 닿는 한 장면, 그 장면에 도달하면 얻게 되는 정화작용이 있다. 모든 걸 해소하게 되는. 갈망이 아닌 완결된 만족감. 오늘 밤에는 제주로 향한다.

2025년12월13일

서울에 왔다. 공기가 차다. 잠을 잘 못자서 피로함을 못이기고 낮잠을 잤다. 밤이 됐다. 내일은 아침부터 바쁘다. 얼른 자야지. 오랜만에 서울이다. 기운차게. 그러고 보니 오늘 밤은 기분이 산뜻하다. 잠이 잘 오겠다.

2025년12월12일

계속해서 요동치는 것들에 멀미가 난다. 피곤한 몸은 잠자리에 뉘이면 회복되는 것만 같다. 마음은. 지치는 마음은 어떻게 챙길 수 있는지…. 아직도 쉽지가 않다. 자신을 제법 다스릴 줄 안다고 생각했었나. 그래도 예전보다는 조금은 자랐다고 느꼈나. 사실 여전히 몸도 마음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 타인에게 민감하지만, 나에게는 둔한. 너는 괜찮니? 너는? 너는 어떠니? 근데 나는 어떻지. 나는 괜찮은가. 단단하게 굳어진 습관이 저주가 되는 때는 자신을 괴롭게 만들 때가 아닐까.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괴로움이 결국 나를 파괴하게 된다면. 구원의 존재가 내 앞에 찾아왔을 때 과연 알아차릴 수 있을까. 고통을 버티라고 다그치는 것은 해답이 되지 못한다. 사랑으로 감싸는 건 많은 것을 감춘다. 찰나의 깨달음은 다시금 혼란하게 무의식의 길로 들어선다. 나는 구원의 손을 잡기에 너무 취해버렸다. 술이 깰 때까지 잠을 자야지.

잠이 안 와서 끄적이게 되네. 지금이 언제쯤인지 어딘지 뭐 하는 중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다. 어쩌면 뭐가 뭔지 알 수 없다는 게 좋은 게 아닐지…. 항상 무언가를 알아야 좋다고 생각했던 게 나를 괴롭게 했는지도 모르겠네요.

2025년12월8일

종종 아버지와 연락한다. 별일 없으시냐는 내 질문에, 별일이야 많지. 라는 대답을 듣는다. 별일 없이 산다는 장기하 노래가 있다. 별일은 '드물고 이상한 일', '특별히 다른 일'을 뜻한다. 별일 사실로 존재한다기보다는 내 주변 사건과 내 상황을 인지하는 관점이다.
어제 낮, 오현네 방문하자마자 재현까지 셋이서 회의하고 서는 장례식장과 화장장에 방문했다.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이 거기에 있으니까. 별일이다 싶게도 장례 산업과 관련해서 아이템을 준비하고 있다. 장례지도사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화장장에 근무하는 공무원과 대화를 나눴다. 죽음은 별일 같은데, 막상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별일이 아니라는 느낌으로 말하고 움직인다. 한 발짝 다가가면 풍경이 변하고 사건이 바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