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먹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서가수와 팟캐스트 녹음을 했다. 매번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는 때가 있지만, 막상 녹음을 시작하면 편안하게 대화를 주고 받는다. 나도 말을 하긴 하지만, 주로 서가수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 즐거움이 생기는 것 같다. 서가수 같은 일상을 보내는 사람은 정말 손에 꼽을 거야... 멋진 친구다. 앞으로 20년 간 설렁설렁 열심히 녹음하자.
저녁에는 영두의 공연을 다녀왔다. 신촌극장에서 열렸는데, 작년 수려의 공연 이후 두 번째 방문. 영두의 소식은 작년 말에 낸 정규 앨범으로 접했다. 21년 남해에서 무럭무럭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처음 만났는데, 어느새 3년이 훌쩍 지났다. 영두가 단톡방에 소식을 올려줬는데, 서가수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가기로 했다.
늦은 저녁, 공연장에 앉으니 기분이 새로웠다. 도시의 예술가들을 남해로 불러 모아서 같이 밥먹고, 놀고, 술먹고, 얘기하고, 각자의 생각을 나눴는데, 어느새 시간이 흘러 그의 작업을 만나는 시간이라니. 그리고 공연의 첫 곡이자 앨범 첫 트랙 제목은 <무지개마을_남해>였다. 영두는 남해에서 머물렀던 우리의 그 장소를 시작으로 정규앨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고 곡을 설명하고 연주를 시작했다. 남해의 파도소리가 들리고, 선율이 흐르니, 정말 그 장소가 기억 속에서 피어났다. 첫 곡을 시작으로 영두가 다녀왔던 지역 곳곳을 그의 입으로 전하는 이야기와 그가 연주하는 음악으로 만났다. 이 앨범이 지역을 상징하는 것보다 그 당시의 자신을 상징하는 프로젝트를 생각했다는 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실제로 한 시간 정도 됐던 공연에서 한 곡 한 곡을 통해 아름다운 곳들을 실컷 여행했는데, 그 지역들을 만났다는 것 보다는, 그와 함께 돌아다녔다는 생각이 더욱 컸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멋진 작업자인지 새삼 다시 느끼게 됐다.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와서 서로가 반갑고, 인사를 나누고, 지나버린 몇 년의 시간을 다시금 느껴보고, 그 시간동안 변한 것 그리고 변하지 않은 것을 생각해보고, 술도 안 마셨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서가수가 담배를 한 대 피우니까 나도 하나 달라고 해버렸다. 제법 오랜 시간을 금연했는데 말이야. 뭐 기분이 좋았으니까 그 정도는 가벼운 의식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
좋은 기분으로 공연을 다 보고서 서가수와 둘이서 간단하게 작업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서가수는 삶의 어떤 것들을 정돈하고 발표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고 했다. 나도 영두의 공연을 보고 나니 작업 하고 싶다는 욕구가 크게 들었다. 지금도 글을 쓰고 있지만, 더욱 소중하게 작업하는 시간을 다루고 싶어졌다. 그저 관성적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게 아니라, 내 삶을 잘 정돈하고,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다랄까.
늦은 밤, 집에 손님이 왔다.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