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통

늦은 밤에 갑작스레 시작한 복통으로 화장실 변기에 앉았다. 저녁에 먹었던 피자가 문제였을까. 같이 먹은 진선은 아무렇지도 않은 걸 보니 딱히 음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요즈음 먹은 것 중에 의심스러운 건 없었다. 배가 얼마나 아픈지 몸에 힘도 잘 들어가지 않았다. 종종 설사를 하기는 하지만, 이럴 때는 참 무력해진다. 그저 하염없이 아픈 배를 쥐어 잡고 항문에서 묽은 변이 흐르는 느낌을 힘없이 감각하고만 있는다. 화장실 벽을 주먹으로 꾹 누르면서 기어가는 소리로 신음한다. 흐느끼는 소리에 뜬금없이 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기다 정말. 똥 싸면서 신음하는 것도 똥 싸면서 웃는 것도. 배탈이 나면 정말 아무것도 중요한 게 없어진다. 과거의 후회도,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이, 그냥 지금 이 아픔이 얼른 사라지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한껏 쏟아내고 나서, 아무리 먹었던 걸 생각해도 문제 되는 게 떠오르지 않으니, 사실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게 아니라 나에게 있는 것일 수 있었다. 면역력이 떨어졌나. 스트레스 관리를 못했나, 요즘 잠을 충분히 못 자는 것 같기도 했는데, 아니다. 슬슬 한번 배탈 날 때지. 그러고 보면 일 년에 한두 번씩은 꼭 이런 경험이 생긴다. 아랫배가 싸-한 느낌이 들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변기에 앉아서 정신줄을 놓으며 모든 후회와 걱정을 털어낸다. 지금을 버텨야 하니까. 그러고 나니 아픈 게 낫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