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아무래도 컨디션이 좋지 않은데, 피곤해서 그런가 싶었다. 19일 새벽에 이곳 퍼스에 도착해서 사흘이 지났다. 약 14년 만에 다시 방문했는데, 묘한 기분이다. 스무살에 왔었는데 지금은 서른넷이다. 다시 온 이 장소는 그대로인 듯 변했다. 아득히 먼 시간이 낯설다. 나도 그대로인 듯 변했나 보다.
아침에 일어나면 자는 친구들이 깨지 않게 조심이 거실로 나와서 요가 매트를 깐다. 관절 이곳저곳이 뻑뻑하고 근육이 긴장된 상태다. 천천히 들숨과 날숨을 지나면서 몸을 움직이면 기운이 난다. 요가를 끝내고 오전 시간을 멍하게 보내고 나면 잠이 다시 솔솔 와서 낮잠을 자기도 한다. 책도 읽고 글도 써야 하는데 생각은 하지만 막 열심히 하지는 않는다. 내일은 퍼스 남쪽으로 1박 2일 여행을 간다. 여행을 왔는데 여기서 다시 여행을 가네. 두겸이가 와이너리 가고 싶다고도 했는데, 와인도 제법 마시게 되겠다. 지난 이틀간 두겸이 저녁마다 맛있는 와인을 큐레이션에서 함께 맛봤는데, 좋더라.
앞으로 9일간 퍼스에 더 머물 텐데, 서른넷의 나는 이곳을 어떻게 남기려고 할까. 스물의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이곳에서 지냈는지 까마득하다. 그때는 지금과 어떤 게 달랐을까. 과거의 시간을 생각하면 영화 <컨택트>를 떠올린다. 그때의 나는 현재도 여전히 퍼스의 이곳저곳을 오가면서 영어 공부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의 나와 동시에 이곳에서 머무는 중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