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6월16일

지난 토요일, 일요일은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서 열린 디엠지피스트레인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출발 전부터 날씨가 그리 좋지 않을 것 같다는 기상 예보를 확인했지만, 가는 길은 맑은 날씨로 기분이 산뜻했다. 약 한 시간 반을 이동하고 도착한 고석정은 일 년 만이었다. 풍경은 여전했고, 허기진 배를 달래려 얼른 점심을 먹었다. 보리밥에 채소, 들기름을 살살 뿌리고, 비지찌개와 순두부를 맛보니 반주가 빠질 수 없었다. 진선과 가볍게 소주를 들이켜고 알딸딸하게 1일 차 공연을 즐기러 향했다. 행사장에 들어가서 자리를 깔고 행사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니, 정근과 수려가 들어왔다. 넷이서 자리에 앉아 수다도 떨고, 맥주도 마시다 보니 어느새 구남 공연이 시작하려고 했다. 펜스 앞으로 가니 옆에 젊은 친구가 혼자서 구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순간을 남기고 싶었는지 진선에게 사진을 찍어줄 수 있냐는 요청으로 서로 인사도 나누고 가벼운 스몰토크를 했다. 딱 나랑 열 살 차이가 나는 친구였다. 대학교에 다니고, 장기하를 좋아하고, 밴드동아리를 한다는 그 친구와 공연 내내 뛰어놀고서 인사를 마치고 바이바이. 이때부터는 취기가 많이 올라왔는지,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냥 계속 맥주 마시고, 앗차차 부스도 갔다가, 자리에도 앉았다가,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저녁을 정근 수려랑 먹고 소주를 더 마시니 정신을 못 차리는 정도였나... 앗차차 부스 앞 의자에 앉아서 뻗었다…. ㅎ 다시 일어나서 놀다 보니 숙소를 향할 때. 첫날이 그렇게 끝났다. 아침 6시가 되니 잠에서 깨더라. 머리가 얼마나 아픈지…. 다시 자려고 노력해서 두어 시간 더 잤다. 일어나서 집에서 챙겨온 모카포트에 커피를 내려 마셨다. 천천히 눈을 뜨는 친구들이 생겼고, 본격 2일 차가 시작되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며 테라스에 앉아서 책을 읽었다. 아침 9시 반, 철원의 한여름 날씨가 인상적이었다. 주변 풍경은 초록하고, 바람이 살랑 불었다. 아직은 아침이라 파라솔 아래 그늘은 제법 시원했다. 마침, 읽던 책의 내용이 참 공교로웠다. 한 그루의 나무 그리고 거기에 열린 열매의 의식에 대한 묘사가 있었는데, 내 눈앞에 보이는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초록 잎을 바람을 따라 흔들며 얇은 나뭇가지가 하늘로 향하는 모습이 독서하는 나를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 듯싶었다. 언제부터 여기 심어졌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을 이렇게 구경하고 보냈을까. 아무런 말을 하지 않던 나무는 내가 마시는 커피 향을 맡으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느새 다른 친구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체크아웃 준비를 했다. 선우가 테라스로 나와서 커피를 마시며 내가 읽던 책 내용을 물었다. 그렇게 둘이 대화하다 보니 눈앞의 나무는 자연스럽게 점점 내 의식에서 벗어났고 이내 사라졌다. 모두가 준비되고 숙소를 나서 점심을 먹으러 이동했다. 두부전골과 녹두전에는 막걸리가 빠질 수 없었다. 막걸리를 몇 잔 들이켜며, 친구들과 수다를 한참 떨고서는 알딸딸한 기분으로 행사장으로 향했다. 2일 차 4-5시쯤부터는 비가 오기 시작했다. 어른들이 비 맞으며 노는 재미는 이런 페스티벌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일상에서는 이런 자유와 광기를 드러내기 쉽지 않을 텐데, 이곳, 이때는 마음껏 분출해도 누가 뭐라고 하기는커녕 더욱 신나 하는 모습으로 함께하니까. 그래서였나 비맞으면서 미친 듯이 뛰어댔다. 음악도 좋고, 비도 좋고, 신난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도 다 좋았다. 그러다가 만난, 어제 구남 펜스 옆 대학생 친구를 다시 만났다. 잔뜩 취한 그는 캠코더를 들고서 나와 친구들,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취해서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는 인터뷰어는 결국 어느새 어제의 나처럼 앗차차 부스 앞 의자에 앉아서 뻗었다. 맨정신에 그 모습을 보니 어이구…. 술을 조심해야지 싶었다.

한참을 놀고 나니 이제 집에 가야 할 때. 쏟아지는 빗속을 달리며 서울로 향했다. 이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당장 내일모레 호주로 향한다. 소형과 오리 만나러. 조금만 더 일상을 미루고 특별하고 비일상적인 시간을 겪게 되겠다. 오늘은 지난 이틀의 피로를 풀기 위해서…. 아무것도 안 했다. 내일은 짐도 정리하고, 작업도 조금 해 놔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