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3월13일

지난 월요일부터 오후 시간에는 목공 작업실에 나가서 두세 시간이라도 뭘 만들어보자고 마음먹고 오늘까지 다녀왔다. 집에서 글을 쓰면서 출력되는 서류들을 정리할 서류함이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간단하게 도면 작업을 하고서 제작을 시작했다. 아직도 미숙해서 그렇지만 막상 나무를 자르고, 깎고, 붙이다 보면 생각한 것과는 조금 다르게 진행된다. 치수 계산을 잘못했다거나, 나무의 특성에 맞춰서 설계한 것이 아니라 수정해야 하거나 등등. 하루에 두 시간, 길어야 세 시간 작업이다 보니 일이 더디기도 하고, 막상 작업실에 도착하면 정리하고 치우는 데 시간을 잔뜩 쓰기도 한다. 그렇게 오늘 만들어서 결과물을 보니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조금 엉성한 느낌도 들었고…. 그래서 그냥 연습할 겸 다시 하나 만들어보자 해서 다시 처음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처음 작업하던 때와는 다르게 능숙하게 만들어졌다. 제작 시간도 단축되고, 이음새도 더 깔끔하고, 완벽하진 않지만, 당장 몇 시간 전보다 나은 결과물이 눈앞에 나왔다.

십여 년 전 대학 시절에 밥을 몇 번 얻어먹었던 선배가 생각났다. 학과에서도 조금 독특한 선배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밥을 먹으며 해줬던 얘기가 있었다. 자신은 과제로 작업을 할 때 항상 재료를 두 배로 산다고 했다. 하나는 그냥 만들고, 두 번째가 진짜 과제물이라고 했다. 그때는 이 사람 열정이 대단하다고 하고 넘겼다. 나는 그 대화 이후에도 작업했던 것을 다시 그대로 반복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무엇이든 반복하는 것에 쉽게 싫증을 느낀다는 핑계를 대기만 했던 것 같다. 항상 새로운 것, 두근거리게 하는 것만 쫓으며 결정하고 행동했다. 그로 인해 얻는 것도 있었겠지만, 오늘에서야 삶의 다른 면도 다시 보게 되는 건지 모르겠다.

글쓰기는 또 다른 느낌이다. 목 작업이야 청사진이 준비돼 있으니까, 결과물에 대한 객관적으로 옳고 그름의 판단이 용이하다. 그러나 글쓰기는 애초에 수치화된 도면이 없거니와, 쓰다 보면 의도한 길을 벗어나기도 하고, 오히려 그랬을 때 얻게 되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글쓰기에 반복이 중요하지만, 목공 작업의 반복으로 얻는 숙련도와는 결이 다르다. 마치 조소, 조각과 같이 하나의 덩어리를 다듬고, 다시 다듬고, 다시 다듬어 가면서 얻게 되는 디테일이 중요하달까.

글이든 물건이든 그렇게 만들어진 것을 내려놓고 다시 새롭게 쓰고 만드는 행위를 시작할 때면 정말 막막하기 그지없다. 사실 막막하다는 건 무엇이든 시작할 때만 찾아오는, 내가 아직도 시작할 수 있다는 감각을 갖게 하는, 끝이 아니라 시작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 순간이기도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