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1월2일

오랜만에 영상자료원에 다녀왔다.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 관람. 예전에 봤었지만, 촬영감독 정일성 회고전으로 기획되어, 영화 상영과 함께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강연 프로그램도 있어서 다녀왔다. 영화를 보고서 정성일 평론가의 강연은 장장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진행됐다. 알았으면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겠지만, 몰랐다. 한 시간 하려나 했는데 3시간…. 힘들더라. 그래도 오랜만에 품격 있는 영화 이야기를 들었다. 에이포 용지를 몇 장을 준비했는지, 3시간 동안 계속해서 종이를 한 장씩 들고 내리는 모습이 인상 깊더라. 다시 본 영화는 정성일 평론가의 강연으로 더욱 풍성하게 기억될 듯싶다. <취화선>이 내 취향에 들어맞지는 않았지만, 임권택과 정일성(촬영감독)에게 선사하는 듯한 강연은 취향을 넘어서는 품위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기억에 남는 몇몇 문장. (맥락은 따로 있으나 기록하지 않겠음)
―서사에 복종하지 않는 화면
―시행착오로 영화를 발전시킨 이
―영화를 아프게 만드는 건 연출의 일이지만, 화면을 아프게 만드는 건 촬영이 할 일
―화면비의 변화는 촬영의 입장에서는 구도의 문제, 연출의 입장에서는 동선의 문제다
―어떤 말들은 촬영이 하지 말아야 한다. 가령 화면에 아픔이 담겨야 한다는 말.
―촬영이 감각이 아니라 감정을 목표로 하는 건 이상한 일이다. 사후적 표현은 가능하겠으나, 찍어야 하는 대상에 아픔을 둔다는 말은 공허하게 들릴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걸 찍고 싶은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