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10월26일

막걸리를 많이 마시면 머리가 아프다는 사실을 왜 막걸리를 마실 때는 잊는 걸까. 아니 잊지는 않았지. 분명히 알고는 있지만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서 마시게 된다. 어제는 막걸리를 많이 마셨다. 많이 취했고, 오늘 아침에는 머리가 아파서 침대에서 일어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계속 누워있었다. 동거인은 일하러 밖으로 나갔고, 혼자 남은 나는 침대에 누워서 릴스 따위나 보면서 시간을 축냈다. 점심쯤 되니까 뭐라도 먹어야지 하고 일어났는데, 딱히 머리가 아프지 않았다. 덱시부프로펜을 먹으려고 했는데, 막상 몸 상태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안 먹었다. 

배를 채우기 위해서 뭐라도 먹으려고 거실에 나오니까, 어제저녁 술자리 흔적이 밝은 햇빛에 드러났다. 식탁에는 빈 막걸릿병 6개가 라벨이 뜯긴 채로 자리하고, 다 먹고 아무것도 든 게 없는 피자 박스, 사이드로 주문한 치킨텐더, 프렌치프라이 박스도 자리했다. 막걸리를 따라 마시던 유리컵을 보니 속이 좀 안 좋은 것 같기도 했지만, 빈속이라 그렇겠지, 하면서 식탁을 치웠다. 다 치우니 뭘 해 먹기가 귀찮아서 라면을 하나 끓였다. 신라면 건면인데, 튀긴 면이 아니라서 그냥 신라면과 비교하면 열량이 낮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건강이나 다이어트랑 상관없이 건면이 입맛에 맞다. 라면을 끓이고 그릇에 덜어서 치즈 한 장을 올리니 김밥천국이 따로 없었다. 뜨끈한 라면과 고소한 치즈를 후루룩 다 먹고는 집 청소를 간단하게 했다. 설거지도 하고, 분리수거도 하고.

작업을 하려고 모니터를 보지만, 역시 컨디션이 좋지 않다. 그냥 유튜브나 보자. 뮤지션들 라이브 영상도 보고, 개그맨들의 콩트도 보지만 감동도 없고 입꼬리도 그다지 올라가지 않는다. 오전에 머물던 침대에서와는 또 다르게 시간을 축냈다.

카톡으로 사진 21장이 왔다. 서가수가 보낸 사진들이다. 어제는 사실 팟캐스트를 시작하는 기념으로 사진을 촬영한 날이었다. 서가수는 친구 손권에게 부탁해서 우리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나는 어제 손권을 어제 처음 만났는데, 그는 삼국지 손권 이름을 따서 별명처럼 쓴다고 했다. 왜 하필 손권이었을까. 나는 삼국지를 만화로 읽었는데, 내 기억 속 손권은 조금 애매한 인물이었다. 만화에서는 손권을 뚝심 있는 것 같지만 조금 고지식하고 우유부단한 인물로 묘사했다. 처음 보고 이야기 나눈 손권은 만화 속 손권과는 느낌이 달랐다. 그의 배경과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신의 삶을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실행하는 사람으로 생각했다. 뭐 첫 만남에 사람을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마는…. 왜 손권으로 지었는지 물어볼걸…. 여하튼 나, 서가수, 손권은 술에 취해서 되지도 않는 얘기들을 떠들었다. 기억이 자세히 나는 건 아니지만, 영화 얘기가 나와서 미드소마가 어쩌고 재밌고, 유전 어쩌고 무섭고, 연극 얘기가 나와서 극단이 어쩌고, 배우가 어쩌고, 중간에는 기타치고 노래도 했었네…. 그렇게 떠들다가 자리의 목적이 우선 사진찍기였으니, 취해서 떠드는 나와 서가수의 모습을 손권이 찍었다.

어젯밤에만 해도 취해서 뭘 찍는지 어떻게 찍혔는지 대강 보고 좋네! 잘 나왔다 떠들었는데, 오늘 맨정신에 사진을 보니 술 냄새가 풍겼다. 서가수가 황정민이 조승우랑 놀러 가서 찍은 것처럼 술톤으로 찍히기를 원했던 것 같다.

다시 작업을 하려고 모니터를 보지만, 그다지 의지가 생기지 않았다. 어느새 하루가 끝나가서 일기라도 남겨본다. 내일은 오전에 한강을 둘러보는 일정이 생겼다. 늦지 않게 자야지. 내일은 작업도 열심히 해봐야겠다.